나는 오늘도 타임머신을 가동하고 앙리뒤낭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마음이 무겁네요. 1859년 6월 솔페리노 전투에서 만나는 그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럽은 국가 간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군대는 빠르게 이동했지만 의료 체계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전투가 끝난 뒤에도 수많은 부상병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전장에 남겨지는 일이 흔했습니다. 뒤낭은 사업문제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를 만나러 가던 길에 솔페리노 전투 전후의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수많은 부상병들이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되죠. 당시 뒤낭은 군인도, 의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라나 가장 먼저 "저 사람도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보고, 가슴 아프게 괴로워하고 힘겨워했죠. 그래서 결심하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꾸며나가겠습니다.

전쟁터에서 피어난 가장 따뜻한 깃발
앙리 뒤낭은 사업차 프랑스를 방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솔페리노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전투는 끝났지만, 들판에는 수많은 부상병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의료진은 턱없이 부족했고, 물도 약도 부족했습니다. 적군과 아군을 가릴 여유조차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뒤낭은 그 장면을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신음. 바람은 화약 냄새를 실어 왔고, 들판은 더 이상 초록빛이 아니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쓰러져 있었고, 누군가는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었고, 누군가는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못한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앙리 뒤낭이었다. 그의 옷은 먼지와 피로 얼룩져 있었고, 눈에는 깊은 충격이 어려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마주 섰다. 잠시 후 그는 작은 물통을 들고 한 부상병에게 다가갔다. 그 병사는 적군이었다. 곁에 있던 사람 하나가 말했다. "그는 적군입니다." 뒤낭은 잠시 그 사람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이 사람은 적이 아니라 다친 사람입니다." 그 한마디에 주변은 잠시 숙연해졌다. 잠시 후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붕대를 가져왔고, 누군가는 물을 길어 왔으며, 누군가는 떨리는 손으로 상처를 감싸 주었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투티 프라텔리(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그 외침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외침으로 들렸고, 공감하였다. 적도, 아군도, 그 순간만큼은 그냥 모두 상처 입은 사람이었다. 나는 뒤낭과 함께 작은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바닥에는 부상병들이 빼곡히 누워 있었다. 그는 밤이 깊도록 물을 나르고, 상처를 닦고, 떨리는 손을 잡아 주었다. 쉴틈도 없는 지옥 같은 현장이었지만 지쳐 있는 뒤낭에게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넸다. 그는 찻잔을 손에 쥐고도 쉽게 마시지 못했다. 주변에는 여전히 신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긴장 속에 있는 뒤낭에게 나는 조용히 물었다. "무엇이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합니까?" 그는 나의 질문에 대답할 기력도 없어 보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입을 떼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잠시 뒤 그는 작은 수첩을 꺼냈다. 무언가를 쉼 없이 적기 시작했다. 나는 물었다. "기록하시는 겁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이 모습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 기록은 훗날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솔페리노의 회상
제네바로 돌아온 뒤에도 뒤낭은 그날의 풍경을 잊지 못했습니다.그가 기록한 생생한 현장의 상황은 훗날《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 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마침내 세계는 한 가지 약속을 하기 시작했다. 전쟁 속에서도 다친 사람은 보호받아야 한다. 의료진은 존중받아야 한다. 인도주의는 국경보다 앞서야 한다. 그 약속은 오늘날 국제적십자위원회와 제네바 협약의 출발점이 되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뒤낭은 마지막 부상병의 손을 조용히 잡아 주었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남기고 싶으십니까?" 그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사람들이..." 잠시 미소를 지었다. "적을 보기 전에 사람을 먼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시간의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행 가방을 열어 보았다. 그 안에는 또 하나의 찻잔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노자의 잔. 제너의 잔. 파스퇴르의 잔. 플레밍의 잔. 소크의 잔. 그리고 앙리 뒤낭의 잔. 여섯 개의 찻잔은 서로 다른 시대에서 왔지만, 모두 같은 온기를 품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다는 믿음.
잊지 말아야 할 한마디 그 큰 외침(국제 적십자 운동)
나는 솔페리노에서 만난 앙리뒤낭을 뒤로 하고 도착할 현세의 좌표를 찍고 타임머신에 올라탔다. 현재로 돌아오는 길, 문득 오늘날 전쟁과 재난의 현장에서 붉은 십자가와 붉은 초승달이 새겨진 조끼를 입고 묵묵히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시작은 거대한 권력도, 군대도, 국가도 아니었다. 한 사람이 전쟁터에서 쓰러진 또 다른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나는 마지막 차를 천천히 마셨다. 따뜻한 김이 하늘로 피어올랐다. 오늘도 또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세상을 바꾼 영웅이 되려고 전쟁터에 간 것이 아니었다. 사업차 간 곳에서 필연적으로 만난 눈앞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따뜻한 마음은 오늘도 국경을 넘어,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깃발이 되어 펄럭이고 있었다. 시간의 문은 조용히 닫혔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라는 외침은, 시대를 건너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솔페리노 회상이라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단지 전쟁의 참혹함 만이 아닌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부상자 만은 중립적으로 돌 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이 질문이야 말로 훗날 국제 적십자 운동과 제네바 협약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역사를 바꾼 것은 거재한 무기도 아니요, 거대한 세력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한 사람이 끝내 잊지 못했던 기억을 기록하고 이를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림으로 인해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잠시 회상해 보았다. 이후 대화는 실제 대화는 아님을 이해하고 봐주길 바랍니다. 나는 모든 상황이 지난 뒤낭에게 물었다. " 왜 그때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까? " 그는 바로 대답을 이어가지 못했다. "나도 사실은 사업을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저 들판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본 순간, 저는 더 이상 사업가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경청하였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들은 군인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며, 누군가의 아버지라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 사실을 현실로 보고 있는 이상 저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이야 말로 인도주의 적이며 적십자정신의 바탕이 되는 말이 아니던가.
★항해일지★
인류를 바꾼것은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전쟁 속에서도 인간을 잊지 않으려 했던 한 사람의 마음이었다.
☆다음여행☆
이탈리아 피렌체로 떠나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을 만나러 떠나 보려 합니다. 그녀가 등불을 든 여인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된 사연과 의료 개혁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과정을 만나 들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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