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조너스 솔크와의 마지막 여행을 떠납니다. 이번 여정은 「인류를 살린 사람들」 시리즈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철학대로 업적보다 사람을 먼저 만나고, 역사적 사실을 가장 먼저 존중하며 이야기를 풀어가겠습니다. 역사적으로 1950년대 미국에서는 소아마비가 가장 두려운 질병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여름마다 수만 명의 아이들이 감염되었고, 많은 아이들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소크는 불활성화(사멸)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고, 1954년에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백신 임상시험이 진행되었습니다. 1955년 4월 12일, 백신의 효과가 공식 발표되면서 전 세계는 환호했습니다. 또한 특허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소크는 "사람들에게 특허를 낼 수 있나요? 태양에 특허를 낼 수 있나요?"라는 취지의 답을 남긴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그를 만나러 떠납니다. 타임머신의 문이 열립니다~~~
인류를 살린 사람들-조너스 솔크 (마지막편)
소아마비 백신개발
도착한 곳은 1955년 미국 미시간. 시간의 문이 열리자 사람들의 긴장된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기자들은 건물 앞에 모여 있었고, 과학자들은 말없이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도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늘 발표 하나가 수많은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행사장을 떠나 조금 떨어진 연구실로 향했다. 예상대로 조너스 솔크는 그곳에 있었다. 모두가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는 책상 위 연구 노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그는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지었다.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군요." 우리는 창가에 작은 찻상을 놓았다. 따뜻한 홍차에서 김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창밖에는 이른 봄 햇살이 연구실 바닥을 길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긴장되십니까?" 그는 솔직하게 웃었다. "많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찻잔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수년 동안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연구 결과가 아니라 아이들입니다." 그 말에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공원에서는 아이들이 공을 던지며 뛰어놀고 있었다. 그 평범한 풍경이 당시에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소아마비가 유행하는 여름이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수영장에도 보내지 못했고, 놀이터마저 두려움의 공간이 되곤 했다. 조너스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저 아이들이 두려움 없이 뛰어놀 수 있다면, 제 연구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잠시 후 연구실 문이 열렸다. 한 연구원이 숨을 고르며 들어왔다. "발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말없이 행사장으로 걸어갔다. 잠시 뒤 결과가 발표되었다. 백신은 안전했고, 높은 예방 효과를 보였다. 순간 행사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기자들은 급히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조너스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축하드립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제가 축하받는 날이 아닙니다." "오늘은 아이들이 자유를 되찾은 날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내 마음도 조용히 울렸다. 사람들이 함께 누려야 할 희망이었다.
솔크의 백신개발은 헌신과 나눔의 정신으로 실천하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 수는 없잖아요
1955년 4월 12일.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되면서 솔크의 백신은 안전하고 효과적인 것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수많은 부모는 안도의 눈물을 흘렸고, 아이들은 다시 놀이터로 돌아갈 희망을 얻었습니다. 세상은 솔크를 영웅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영웅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연구는 혼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며, 수많은 연구자와 의료진, 그리고 임상시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후 한 방송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었습니다. "이 백신의 특허는 누구의 것입니까?" 솔크는 망설림없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특허를 낼 수 있습니까? 태양에도 특허를 낼 수는 없잖아요?" 이 한마디는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물론 당시 백신의 특허를 둘러싼 법적 상황은 오늘날보다 훨씬 복잡했고, 이 말 역시 그 맥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솔크가 백신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발견을 소유의 대상보다 인류를 위한 공공의 자산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솔크는 백신의 성공 이후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새로운 바이러스 연구와 면역학 발전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였고,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 뜻은 훗날 캘리포니아에 설립된 솔크 연구소로 이어졌습니다. 그곳은 오늘날에도 생명과학과 의학 연구가 계속되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명예를 얻은 뒤에도 그는 "무엇을 더 배울 수 있을까?"를 묻는 연구자였습니다.
★항해일지★ 가장 위대한 발견은 사람을 살리는 기술(소아마비 백신개발)이었고, 가장 위대한 선택은 그 기술을 사람들과 나누는 마음(진정한 과학자, 의학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