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는 많은 역사적인 인물을 만나 보았다. 제너는 병을 예방하였고, 파스퇴르는 백신을 발전시켰으며, 플레밍은 감염을 치료하였고, 솔크는 아이의 미래를 지켰다. 물론 사상가도 만나 보았지만 내가 시리즈로 준비한 (인류를 살린 사람들)중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길을 걸었던 사람을 만나러 떠나려 합니다. 새로운 약을 만든 과학자도 아니었고, 수많은 생명을 구한 의사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전쟁터에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도왔던 평범한 사람입니다.
나는 여행 전 타임머신의 귀가 좌표를 입력하고, 목적지는 1828년 스위스 제네바로 입력 후 엔진을 가동하였다. 1828년 19세기 유럽은 산업혁명이 확산되면서 도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전의 이면에는 가난과 질병, 사회적 불평등이 여전히 만연하였습니다. 전쟁도 끊이지 않았고, 부상병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어나가기 수천 명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국제적인 인도주의 단체라고는 개념조차 없던 시대였죠. 이러한 시대에도 위대한 스위스 출신의 앙리뒤낭이 있었으니 그를 만나러 떠나겠습니다.

소년 앙리뒤낭을 만나다
타임머신의 문이 열리자 맑고 시원한 공기가 나의 가슴을 뻥 뚫는 듯한 생기로운 기분이 들었다. 멀리 알프스 소녀의 요들송이 들려오는 듯한 알프스 설산이 보인다. 만년설이 쌓여 햇빛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고, 호수는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나의 품으로 들어온다. 거리에는 말 두 마리가 이끄는 마차가 힘차게 지나고 있고, 사람들은 활기차게 서로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나는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며 그 호수에 그려진 나무들의 형상이 살랑살랑 흔들거림을 보며 평화롭게 걷다가 문득 오래된 돌길과 마주하게 되었고, 그 돌길을 따라 보이는 작은 집을 향해 걸어갔다.
아담하고 작은 집 주변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고 이곳 호수와 잘 어우러져 마치 동화 속 그림 같아 보였다.
나는 동화속에 빠져 책을 읽듯이 나도 모르게 그 집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창가에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이끌려 이내 그 집문을 두드렸다. 삐그덕 소리와 함께 한 여인이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집안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처음 온 집이 아닌듯한 포근함이 느껴졌다.
벽에는 성경과 몇 권의 책이 놓여 있었고, 식탁 위에는 갓 우려낸 차가 방안 가득 은은한 향기가 나의 코를 타고 기분 좋게 해 주었다.
잠시 나는 의자에 앉아 방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한 소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맑은 눈을 가진 아이였다. 그 아이가 바로 앙리 뒤낭임을 직감했다.
소년은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밝게 인사를 하였다. 나는 미소를 지우며 다가가 그의 눈높이에 맞추어 앉았다. "안녕! 앙리! 나와 잠시 얘기 좀 할까?" 우리는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고 잠시 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으로는 이웃들이 서로 안부를 물으며 수다를 떠는 듯한 여인들도 보이고, 아저씨들은 업무적인 대화를 하는 듯 심각한 표정을 보이기도 하지만 모두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앙리는 무엇을 가장 좋아하나요?" 소년은 금세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이내 "저기 창밖을 보세요. 그냥 난 사람들을 보는 걸 좋아해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노는 걸 좋아한다던지, 비스킷이 좋다던지, 장난감이 좋다던지 그런 대답을 기대했던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사람마다 웃는 모습도 다르고, 어떠한 것을 고민하는지 모두 다른 거 같아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소년이란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년 앙리는 사람을 관찰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사람을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아이였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앙리뒤낭은 신앙심이 깊은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부모는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을 삶의 종요한 가치로 여겼고, 어린 앙리뒤낭도 부모를 따라 자선 활동을 접하며 성장했다.
인도주의의 발원은 부모의 봉사정신
아버지는 고아와 빈민을 돕는 사회 활동에 힘썼고, 어머니는 병든 사람들을 찾아가 돌보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어린 앙리뒤낭도 부모님을 따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선 활동을 하고 있었다.
며칠 뒤 나는 그의 부모를 따라 한 가난한 이웃집을 함께 찾았다. 낡은 집안에는 몸이 불편한 노인이 홀로 누워 있었다. 뒤낭의 어머니는 따뜻한 수프를 건넸고, 아버지는 조용히 안부를 묻고 계셨다. 소년은 아무 말 없이 물 한 잔을 가져다 드리고 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이 있어 몸이 불편한 분들을 돌보는 세상이긴 하지만 난 그분들도 대단한 용기와 봉사정신이 아니면 어려운 직업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앙리뒤낭의 부모님들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봉사와 희생만으로 그들을 보살펴 주고 있는 것이고, 아들 앙리뒤낭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보고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얼마나 따뜻한 마음이 아닌가. 정말 이런 세상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소년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도왔니?" 소년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연한 일이잖아요" " 혼자 힘들어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가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나는 그 말에 어떠한 계산도, 어떠한 형용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그 한마디가 마음에 새겨졌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특별한 순간에 갑자기 용감해지는 것이 아니었구나. 평범한 날에도 누군가의 아픔을 지나치지 않는 마음을 매일 키워온 사람들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해가 저물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주전자에는 따뜻한 차 향기가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차 한잔을 마시며, 소년에게 물었다. "앙리!" "네" "앙리는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니?" 소년은 주전자 목을 타고 슬금슬금 올라오는 물 수증기를 보며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 말들은 들은 나는 "아이코!"라는 감탄과 함께 가슴을 울리는 듯한 큰 깨달음이 채워졌다.
나는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어찌나 맑고 당차게 말하는지 놀라웠다. 그 말은 어린 소년의 소망처럼 들렸지만 조금 지난 훗날에는 전쟁터 한가운데서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씨앗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신음하는 병사들도, 피로 물들어 괴로워하는 병사들도, 이 소년은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한다. "적과 아군을 가리지 말고 모두를 살리자"라는 외침도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아미 가장 중요한 것이 자라고 있었다. 아픔 앞에서는 그 누구도 남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업차 떠난 여행길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다
청소년이 된 뒤낭은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교회와 청년 모임을 통해 봉사활동도 지속해 오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사연을 듣는 것을 좋아했고,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이상주의자만은 아니었다.
청년이 된 뒤에는 사업을 시작했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북아프리카까지 향했다, 그 역시 성공을 꿈꾸는 평범한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에게서 배운 연민은 마음속 깊이 남아 있었다.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프랑스 황제를 만나 도움을 청하고 싶어 했고, 그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로 향한 여정이, 훗날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아직 알지 못한다. 사업 때문에 떠난 여행이 인류의 역사에 남을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항해일지★
인류를 바꾼 것은 거대한 권력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고통 앞에서 걸음을 멈춘 그저 평범한 사람의 마음이었다.
다음 여행
1859년 6월 이탈리아 <솔페리노의 회상>, 수많은 부상자 그들을 볼보는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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