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은 천천히 멈춥니다. 시대는 1885년 7월 파리. 아스파트와 돌로 포장된 도로위로 옴미버스와 2인승 마차들이 바쁘게 오가며 말발굽 소리가 거리에 울려퍼진다. 파리의 7월은 무덥지만, 신사들은 여전히 검은색 실크햇에 프록코틀 입고, 숙녀들은 코르셋으로 러리를 조인채 양산을 쓰고 대로를 거닙니다.바스티유 광장이나 오페라 가르니에 주변의 카페 테라스는 차가운 압생트나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거리 곳곳에는 모리스 기둥이 세워져 있어 카바레 공연이나 연극 포스터가 화려하게 붙어 있고, 소년들은 당일 발행된 신문을 소리높여 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 연구실 안은 유난히 조용합니다. 실험대 위에서는 유리병과 기록 노트가 놓여 있고, 연구원들의 얼굴에서는 긴장감이 흐릅니다. 그때 연구소 문이 급하게 열립니다. 한 여인이 어린 소년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들어옵니다. 그 소년은 며칠 전 광견병이 의심되는 개에게 여러 차례 물렸다고 합니다. 당시 광견병은 거의 예외없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병으로 알려져 있어 모두가 숨죽이며 소년을 주시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마지막 희망을 안고 파스퇴르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인류를 살린 사람들-루이파스퇴르편 다섯번째 여행
연구실은 병원이 아니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파스퇴르는 의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화학자이자 미생물학과 연구자였을 뿐인데, 어머니는 파스퇴르에게만 의지한 채 방문하였기 때문입니다.이 여인은 이미 아이를 잃은듯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얼굴을 스다듬다가도 다시 살려 달라고 메달리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런 급박하고 흥분된 상황에서 파스퇴르는 생각했다. 광견병 백신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가능성을 보였지만, 사람에게는 아직 공식적으로 사용된 바 없었기 때문에 만약에 실패를 한다면 한 소년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파스퇴르는 복잡한 생각에 두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를 결정한듯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의 결정은 파스퇴르 자신에게도 평생 쌓아온 명성과 연구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한 소년의 생명이 걸린 이 상황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의 앞에 있는 것은 논문이 아니라, 한 아이의 생명이었습니다.
기록으로 남은 고민
당시의 기록과 주변 인물들의 회고에 의하면, 파스퇴르는 혼자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러 의사들과 상의했고, 신중하게 상황을 검토했습니다. 소년이 아직 광견병 증상을 보이지 않는 시점이라는 점, 동물 실험에서 얻은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치료를 시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은 무모한 도박이 아니라, 당시 가능한 근거를 바탕으로 내린 가장 신중한 결단이었습니다. 의사들과도 상의를 거쳤고, 아이의 상태가 아직은 병증이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지체한다면 병은 악화될 것임이 뻔한 상황이었기에 동물시험에서의 성공적 사례를 믿고 시행한 것이었음에도 그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물론 역사는 그 결과를 알고 있고, 많은 증상의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아직 파스퇴르는 오늘 이 결정이 얼마나 중대한 역사적 사실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파스퇴르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가로 걸어가 낙엽 하나를 바라보았다. "과학자는 증거를 따라야 합니다." 잠시 후 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 하지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눈앞에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나는 파스퇴르에게 다가가 역사적 사실을 귀띔을 해 주고 싶었지만, 연구실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한 소년과 파스퇴르에게 집중하는 상황이었고, 한치도 눈을 뗄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라 나는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열흘의 기다림
백신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파스퇴르는 며칠에 걸쳐 점차 강도를 높여 가며 백신을 투여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연구소 안에서는 누구도 쉽게 안도의 숨을 내쉬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어떻게 될 것인가. 파스퇴르는 매일같이 소년의 상태를 살폈습니다. 마침내 소년은 병을 앓지 않았고, 조금씩 웃음을 되찾았다, 그리고 다시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소년 조제프 메스테르라는 아무런 일 없이 살아남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파스퇴르는 연구실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따뜻한 차를 한 잔 따라 그의 곁에 섰다. "수고하셨고, 축하드립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축하를 받을 일은 아닙니다" "오늘 한 아이가 살았습니다. 선생님 덕분에요" "이제 남은 삶은 더 많은 아이들이 이런 두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는데 써야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어린 시절의 루이를 떠올렸다. 벌레를 오래 바라보던 소년, 나뭇잎의 색이 왜 다른지를 궁금해하던 아이, 결정 하나를 며칠씩 들여다보던 청년, 그리고 한 아이의 손을 잡고 자신의 모든 연구를 걸었던 과학자. 모든 순간은 하나로 이어져있었다. 위대한 업적은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지는 않는다.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연구실 창문으로 붉은 노을이 비쳐 들어왔다. 파스퇴르는 마지막 찻잔을 들어 내게 건넸다. "사람들이 내 이름보다 백신을 기억하겠지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사람들이 언젠가 선생님의 이름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살리려 했던 그 마음은,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의 손을 통해 이어질 것입니다" 파스퇴르는 말없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창밖의 낙엽은 바람을 따라 흩날렸고, 연구실 안에는 따뜻한 차 향기만이 조용히 머물렀다. 이제 나의 항해도 끝에 다다르고 있음을 직감하고, 열린 타임머신의 문을 향해 걸어가며 나는 생각했다.
파스퇴르는 위대한 과학자가 되기 전에, 끝내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던 인간이었다.
★항해일지★ 오늘 우리는 백신을 만든 과학자를 만나러 왔습니다. 하지만 현재로 돌아오는 길, 우리의 마음속에 남는 사람은 끝까지 한 생명을 지키려 했던 인간 파스퇴르를 만났습니다.
다음여행 세게제2차대전 당시 수많은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항생제도 없어 고통스런 치료를 받던 시기에 세계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발견해 현대 의학의 역사를 바꾼 인물인 알렉산더 플레밍을 만나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