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은 조용히 움직입니다. 스코틀랜드의 푸른 들판이 점점 멀어지고,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도시가 모습에 들어옵니다.
목적지는 19세기말 영국의 런던
거리에서는 마차가 끊임없이 오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증기기관차에서 내려 발걸음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마차와 증기기관차가 뒤섞인 거리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사람들은 런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들 사이에서 낯선 도시를 바라보는 한 청년이 책을 품에 안은채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인류를 살린 사람들-알렉산더 플레밍편 두번째 여행
낯선 도시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
어린 시절의 스코틀랜드에서 보낸 플레밍은 청년이 되어 형들이 살고 있던 런던으로 향했다. 그의 목적은 처음부터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은 아니었다. 가족의 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고,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도시로 오게 된 것이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는 해운회사에서 사무원으로 일을 했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서류를 정리하고 숫자를 확인하는 평범한 직장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무직과 크게 남다르지 않은 일상이었을 겁니다. 산업혁명과 동시에 도시로 몰린 사람들과 그저 일상적인 하루를 지속했다면, 우리는 지금의 플레밍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역사책에서도, 우리 만남도.
여행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인생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플레밍의 청년기는 우리가 아는 위대한 의학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난한 농가의 아들이었던 그는 곧바로 의대에 진학하지는 못했고 생게를 위해 매연이 가득한 19세기말 런던으로 향했다. 첫번째는 런던 연안 무역선 회사의 서기였다. 퀘퀘한 잉크냄새와 먼지 가득한 장부들이 가득한 런던의 한 사무실에 스무살 청년 플레밍은 창밖으로 템즈강의 안개와 석탄 연기가 뒤섞여 있고, 무역선들이 토해내는 고동소리가 간간히 들려오는 사무실에서 높은 나무의자에 앉아 깃펜을 움직이고 있다. 매일 전세게를 오가는 화물선의 선하증권과 무역장부를 정리하는 지루하고 고된 일의 반복이었지만 꼼꼼함과 인내심이 그를 그자리에서 4년간 있게 합니다.
무역회사 서기로 일하던 1900년 영국이 보어전쟁을 겪으면서 애국주의 열풍이 불자 플레밍은 런던 스코티시연대라는 민병대에 자원입대를 하게 됩니다. 그는 실제 전장에 파병되지는 않았지만, 민병대 내에서 엄청난 두각을 나타냈고, 특히 사격 솜씨는 가공할 만한 베테랑 저격수였습니다. 목표를 정확히 조준하는 집중력은 청년 플레밍을 한층 더 단단한 성인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체구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스코틀랜드 시골에서 다져진 통뼈와 민병대 훈련으로 단련된 체력 덕분에 스포츠에도 만능이었던 플레밍은 런던 스코티시연대 수영팀의 수구팀 핵심멤버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플레밍의 삶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우영한 기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1901년 돌아가신 삼촌으로 부터 약간의 유산을 물려 받게 되었고, 그 덕분에 새로운 진로를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당시 그의 형 톰 플레밍은 의사였습니다. 형은 동생에게 의학을 공부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했고, 플레밍은 그 제안을 받아 들였습니다.
이 선택은 운명이라기보다 한 번의 기회와 한번의 결심이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의학 공부를 시작해 세인트메리병원 의과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한 그는 전공을 선택할때도 그의 독특한 이력이 작용했습니다. 원래 그는 외과의사가 되려고 했으나, 당시 세인트메리병원의 수영클럽이 해체될 위기에 처해있을때 병원 수영팀의 주축이었던 예방의학과의 알름로트라이트 교수는 뛰어난 수영실력을 갖춘 플레밍이 졸업후 다른 병원으로 떠나는 것을 막고 싶었습니다. 결국 라이트 교수는 플레밍을 자기 연구실(미생물학/예방의학)에 붙잡아 두기 위해 그를 조수로 스카우트를 하게되는 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연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이러한 플레밍이 도심 속을 바쁘게 걷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청년 플레밍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했다. "스코틀랜드를 떠난 많이 아쉬웠나요?" "가끔은 넓은 들판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넓었고, 저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후회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홍차를 건네며, 다시금 물었다."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그는 잠시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거창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몸속엔 제가 어릴 적 보았던 자연과 닮은 구석이 많이 있더군요"
나는 그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닮아 있다니요?" 그는 찻잔을 내려놓더니 "숲에서는 보지 못했던 질서가 있습니다. 강물도, 나무도, 곤충도 저마다 균형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사람 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안에서는 많은 생명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지요"
우리는 어느덧 대학교 연구실 앞을 지나고 있었고, 한 교수가 플레밍에게 인사를 건넸다.
"플레밍, 오늘도 연구실인가?"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배울 것이 많습니다!"
뛰어난 학생보다 성실한 관찰자
플레밍은 의과대학에서 공부하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화려한 성적만이 아니었다. 그는 주변을 차분히 살피는 습관을 잃지 않았다. 또한 운동에도 재능이 있어 사격 실력이 뛰어났고, 이 덕분에 학교 사격팀 활동을 이어가며 대학에 남을 기회를 얻었다는 기록도 전해 진다.
그는 하얀 가운을 입은 학생들이 분주히 오가는 실험실 문틈으로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연구자의 모습으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그리곤 노트에 기록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곤 차를 한잔 마시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플레밍은 생각을 정리했는지 그를 지켜보던 나에게 한마디 던졌다. "혹시 알고 계십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그는 미소를 지었다. "세상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회를 쥐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기회를 알아보는 사람에게 기회를 줍니다"
훗날 곰팡이가 자란 배양접시를 다른 사람들처럼 버리지 않았던 이유도, 어쩌면 이런 삶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마치 자신에게 다가올 그의 운명을 미리 알고 있는 듯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항해일지★ 인생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운명이 아니라, 작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오늘 만나본 플레밍도 처음부터 의학을 꿈꾸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수많은 직종에 도전하였고, 늦었지만 기회가 되었을 때 자신만의 길을 찾아 끝없이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현재 많은 젊은 청년들이 구직난에 허덕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여러 가지 도전은 하되 자신의 적성과 맞고, 나의 에너지를 쏟아 부울 수 있는 그런 일이 다가온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힘차게 부딪쳐 보고 달려 보시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