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에서는 전쟁과 패권싸움으로 백성들은 고난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중국 춘추시대의 젊은 노자를 만나 보았는데요
오늘은 이어서 주나라의 장서각에서 만나 노자와 차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서각에서의 두번째 만남
장서각의 문을 밀자 오래된 대나무 죽간에서 나는 은은한 향이 공기 속을 채우고 있었다, 먼지가 내려 앉은 서가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길게 비치고, 창밖에는 이름 모를 새 한마리가 잠시 지저귀다 다시 고요 속으로 사라졌다.
그곳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화려한 비단옷도, 권위를 드러내는 장식도 없었다, 담담한 옷차림으로 한 권의 죽간을 정리하던 그는 내가 들어서는 소리를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두번째 만남이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것 처럼 낮설지가 않았고, 그 또한 내가 올 것이라는 것을 짐작이라도 한 것 처럼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오셨군요.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았나요?"
어제 저녁에는 국밥을 먹고 여각에서 잠이 들었는데, 어찌나 조용하고 밤벌레 소리도 아름답던지 이내 잠이 들었었다.
고요속의 대화
나는 조심스레 그의 앞에 앉았다, 작은 화로 위에서 물이 끓고 있었고, 그는 천천히 찻잎을 넣었다. 뜨러운 물이 잔을 채우자 은은한 향이 퍼졌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했다.
둘사이엔 침묵이 흘렀지만 어색하지 않고 편안했다.
오늘날 나는 언제나 대화로 침묵을 메우려 했고,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새로운 말을 찾고, 무언가를 설명하려 애쓰며 관계를 이어가려 했다. 그러나 노자의 묵직한 침묵은 나로 하여금 고요속 대화를 유도하는 듯 했고, 나는 그의 물음에 침묵으로 답을 하고 있었다.
결국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이 많은 책을 읽으셨겠지요" 나는 괜시리 정서각에 진열되어 있는 책 한권을 만지작 거리며 그를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지혜를 가진 분이 선생님 아니십니까?
노자는 나의 질문에 눈을 한번 마주 치고는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책은 그저 사람의 생각을 담고 있을 뿐이네" --------
노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나 바람은 책을 읽지 않아도 계절을 알고 , 강물은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바다를 향해 찾아간다네"
나는 노자를 주시하다가 마시고 있던 찻잔을 내려 놓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정보를 손안에 담고 산다, 검색창 하나만 열어도 수천개의 답이 쏟아진다. 하지만 답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더 복잡해 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노자는 마치 내 생각을 읽은듯 미소를 지었다.
"많이 안다고 해서 그것이 지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네"
산책길에서의 대화
장서실 밖으로 나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궁궐 안에서는 높은 벼슬아치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더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를 경계하고 있었다. 노자는 이들을 빗대어 말을 이어갔다.
"저들은 모두 앞으로 달리고 있네" 나는 갸우뚱하며 되 물었다. "뭐 그것이 잘못이라는 말입니까?" 노자를 말했다."앞으로 달리는 것은 잘못이 아니네, 다만 왜 달리는지 잊어버리는 것이 문제일뿐" 그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의 종을 울리는 듯하였다.
우리는 오늘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더 나은 집을 갖기 위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리고 있지 않는가!
정작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날이 많다.
이름모를 들꽃에서 배운 가르침
노자는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들꽃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저 꽃을 보게"
나는 그가 가르키는 들꽃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온갖 풀 사이에서 피어 오른 보잘것 없지만 샛노랗고 하얀 들꽃이 앙증맞고 귀여우며 아름답기까지 하였다.
"누가 보지 않아도 피고,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향기를 내지" 그는 꽃을 꺾지 않았다.
그저 바라 볼뿐이었다.
"자연은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네"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자신을 내세워 보여주려고만 한다. 더 화려하게, 더 많이, 더 크게, 하지만 노자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 들꽃에서 가장 큰 삶의 가르침을 발견하고 있었다.
저물어 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인생을 논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차를 마셨다. 한모금의 차 향이 입속 가득 퍼지며 머리속 묵직함이 느껴질 쯤. 노자는 나의 잔에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차는 억지로 향을 내지 않네" "그 향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스며들고, 신체의 코와 마음으로 그 향이 느껴지는 것 처럼 사람도 그러하다네" "억지로 빛나려 애 쓰지 말게" "자신의 때가 오면 향기는 저절로 세상에 퍼질 것이네"
나는 그의 말을 오래도록 마음속에 되새겼다.
주나라 잘서실을 나서면서 문득 뒤를 돌아 보았다.
노자는 다시 말없이 죽간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만난 노자를 그러하였다. 세상을 바꾸려 소리치지 않았지만, 그의 고요함은 수천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마음까지 닿고 있었다.
지혜는 세상을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화해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노자는 오늘도 여전히, 서두르지 않는 삶의 의미를 우리에게 조용히 들려주고 있었다.